1917
배경
감독인 샘 멘데스의 할아버지인 알프레드 멘데스가 실제 1차 세계대전 때 전령병을 하셨다고 한다.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1차 세계대전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그리고 그는 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서부전선
처음 영화 시작은 독일군의 포화로 전화선이 끊어져있는 상태다.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라고 하는 주인공은 장군의 명령을 가지고 서부전선을 가로질러 블레이크의 형이 속해있는 부대가 무모하게 독일군이 포진되어있는 곳에 돌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서부전선(The Western Front)이라고 불리는 곳은 250마일정도 남북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지역에 집중에 되어있다. 만약 서부전선을 직접 가로질러 본다면, 우리는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No man's Land
영화 속에서 장군은 두 주인공에게 No man's Land를 건너야 한다는 명령을 한다. 두 주인공은 당황한다. No man's Land는 1차 대전 때 독일군 참호와 연합군 참호 사이에 있던 평균 250m 넓이의 공간이다. 독일군이 처음 전쟁을 시작했을 때 프랑스군이 빨리 항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독일군과 연합군이 벨기에 해안부터 프랑스 중부까지 이어지는 300km의 전선을 두고 4년이 넘게 대치했다. 4년이 넘게 대치를 하면서, 산업 생산력과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던 나라들이 자기들의 모든 노하우를 사용해서 상대편을 죽이기 위한 도륙공장을 만들게 된다. 이것이 바로 No man's Land이다. 하늘, 땅, 지하까지 인간을 죽이기 위한 기계들과 화학약품들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죽음의 땅’인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의 의미를 모르면 2차 세계 대전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1차 세계대전 참호전을 관객들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한다.
제목이 왜 <1917> 일까?
유럽 역사는 전쟁에서 돋보이는 영웅과 전략이 존재한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은 무기의 대량생산과 탱크, 대포의 개발로 개인이 아무리 용감하고, 머리가 좋아도, 아무리 전략이 뛰어나도 확률에 자기 목숨을 맡길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전쟁이었다. 철조망에 열매처럼 널려있는 시신을 보면서,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철사 하나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무기력에 휩싸였다.
1917년은 참호전이 3년째 계속 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병사들은 절망의 상태에서 무력하게 죽음을 기다리며 그저 시간을 버텨내며 No man's Land의 삶을 살아갔다. 감독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을 영웅이나 전략으로 두지 않고 평범한 한 병사로 둔 것 또한 이러한 1차 세계대전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닐까?
영화를 보고 나서
전쟁 속 영웅도 없고 뛰어난 전략도 없는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영화가 그리고 있는 이야기는 한 일병의 이야기다. 영화 속 죽을 고비를 넘긴 스코필드가 블레이크에게 “왜 나를 이런 일에 같이 하자고 했냐”고 물었을 때 블레이크냔 “내가 이럴 줄 알았냐, 나는 그냥 별 것 아닌 일을 시킬 줄 알았다.”고 말한 것처럼. 주인공은 장군도 아니고 대위도 아니고 뭣도 아닌 일개 병사이다. 이 병사는 장군에게 받은 명령을 하나를 가지고 죽어라고 서부간선을 달리고 달린다. 그저 병사가 장군의 편지 전해주는 이 이야기를 왜 이렇게 거창하게 만들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영화 장면을 관객에게 실감나게 전달해주는 원 컨티뉴어스 숏 촬영 방식과 롱 테이크를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 시각 디자인과 음향은 아카데미의 상을 받았을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관객인 나도 보는 내내 스코필드 뒤에서 같이 따라가는 것 같아 영화를 보는 내내 심장을 부여잡고 봤다. 너무 쫄려서.
쨌든 감독은 왜 별 볼 것 없는 병사를 전면에 세워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가게 했을까? 그건 아마도 그 주인공의 처지와 1차 세계대전의 상황이 우리의 일상과 닮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1차 세계대전 속 일개 병사인 스코필드처럼, 전쟁터 같은 이 세상 속에서 나는 뭐 하나도 결정할 수 있는 권한도 없고 힘도 없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바쁜지 헉헉대며 일상을 살아간다. 잠시 멈추면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살지?’라는 생각이 떠오르다가도 별다른 수확 없이 머리만 아프고 괜히 자괴감에 빠진다. 그래서 그냥 이런 생각은 외면하고 다시 바쁜 일상 속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죽어라 달린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바쁘게 사는 게 몸은 힘들지만 마음이라도 편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뒤로 미뤄 두었던 이 질문이 다시 마음속에서 떠오른다.
“내가 달려야 하는 이유와 원동력은 무엇일까?
내가 열심히 산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스코필드에게는 장군에게 받은 명령이 있다. 그래서 그렇게 죽어라 달린다. 나에게는 장군 같은 상사는 없다. 그래서 딱히 명령도 없다. 기껏해야 운전 조심하고, 밥 잘 챙겨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 정도가 있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까 성경 속 하나님의 말씀이 장군의 명령 같을지도 모르겠다. 그 명령이 스코필드가 No man's Land를 건너야 한 것처럼 막막하고 두려울 때도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일상은 1차 세계대전의 배경과 같이 내가 무언가를 잘하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달라지 것 하나 없다. 그런데 그 속에서 받은 명령을 어떻게 성취하느냐애 대해선 주인공과 나는 많이 다르다. 나는 스코필드처럼 죽을힘을 다해 그 명령을 지키려고 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때때로 내게 명령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 명령을 잘 수행하지 못하는 약한 나를 자책하곤 한다. 스콜필드는 자기에게 명령을 준 장군을 원망하거나, 자기의 계급을 자책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명령을 들고 죽을힘을 다해 달린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하나님한테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나님은 왜 이런 나를 선택하셔서 그 고생을 하시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은 왜 나랑 같이 일을 하고 싶어 하시는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 조금은 알겠다. 하나님과 영화 속 장군의 차이점 있다면, 장군은 장군의 명령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 중요했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령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도 중요하고, 그 명령을 들고 달리는 나도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비로소 정말로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선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면 간단하게 끝날 일을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내게 맡기며 나를 성장시키신다.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이룰 수 있을 때까지 부딪치고 넘어지는 그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시며 나를 돕고 계신다. 그리고 결국 그 일을 해낼 수 있도록 나를 이끄신다.
그러니 내가 열심히 산다고 바뀌는 것 하나 없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달려야 하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을 믿고 포기하지 않고 달리다 보면 이런 나도 하나님이랑 같이 뭐라도 하고 있을 것을 꿈꾸며 달리는 것이다. 그러면 달리는 과정이 힘들어도 기쁘고, 내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내가 열심히 달려야 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알 수 있어 고마운 시간이 된 것 같다.
와,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이렇게 까지 글을 쓸 생각은 없었는데, 쓰다보니까 울컥해서 정리되지 않은 말이 횡설수설 나오는 것 같다. 정리 안 되고 논리가 없어도 뭐 이건 내 감상이니 내 마음이지 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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