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2020년 마음의반 기록하기

아이들이 원하는 것_선택 수업 이야기

#천만 2020. 9. 7. 16:21


| 아이들이 원하는 것

“나는 너희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고, 너희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너희들도 알다시피 내가 실수할 때도 있잖아. 나는 알고 싶어. 어떻게 하면 너희들이 즐겁고 신이 나는지.”

 

2학기 개학을 하고 오랜만에 칠판 앞에 선 내가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 수업, 숙제들이 있다. 

 

“책 읽기를 꾸준히 하면 책 읽는 습관이 생겨서 너희에게 도움이 돼”

“청소는 꼼꼼하게 해야 해”

“모르는 문제가 있더라도 도전해 보자”

 

등등등

 

이 모든 소리가 아이들을 위해 했던 말이었지만, 아이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좀 일방적일 때가 있었다. 이 부분이 내가 아이들에게 고백한 내 실수였다. 아이들에겐 내 말이 지겨운 잔소리일 텐데, 그래도 친절하게 “응~!” 혹은 “네~!” 하고 대답했다. 그 대답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르겠다. 

 

학기 초, 서로 친하게 지내는 여자 아이 3명과 친구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수다를 가장한 면담을 한 적이 있다. 면담을 마치고 아이들은 나를 볼 때마다 그 시간이 너무 좋아 내게 고맙다고 말하곤 했다. 점심시간엔 셋이 우르르 몰려와 반짝반짝한 눈으로 언제 또 만나 이야기 나눌 거냐고 묻는 아이에게 나는 대충 “나중에”라고 눈을 피하며 미루기 바빴다.

 

2학기를 준비하면서, 아이들에게 어떤 수업이 필요할까? 그 수업을 어떤 방법으로 진행할까? 에 대해 고민했다. 그때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차일피일 미루고, 내가 생각하는 아이들을 위한 것을 앞세웠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정작 아이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실수하고 싶지 않아, 아이들이 1학기에 내게 했던 말들을 다시 떠올렸다.

 

“목공 수업 하자”

“수공예 하고 싶어!”

“야구는 언제 해?”

“쉬는 시간을 많이 줘~”

“또 수다 떨고 놀자!”

 

2학기는,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를 기준으로 계획하지 않고, ‘아이들이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했는가?’를 기준으로 계획을 세웠다. 다만 꾸준히 하고 있는 책 읽기 습관 만들기를 이어가면서 말이다. (이건 포기할 수가 없다.)

 

그래서 2학기에 새롭게 생긴 수업이 있다. 2주에 한 번 월요일에 ‘차 마시기’를 하고, 교사가 주제를 지정해서 아이들이 선택했던 금요일 선택수업은 아이들이 하고 싶은 수업을 제안하고 선생님이 되어 그 수업을 선택한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수업으로 바꿨다.

 

내가 칠판 앞에서 아이들에게 1학기 때 했던 실수를 인정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자 아이들은 처음에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는지 눈만 꿈뻑꿈뻑했다.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알려줘 선택 수업은 너희들이 원하는 것으로 하려고 해”

 

라고 이어서 말하니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한다. 아이들이 말한 것을 모두 칠판에 썼다. 칠판이 꽉 찼다. 그중 학교 규칙에 어긋나는 활동(예를 들어 게임하기 같은)은 지우고 나니 칠판의 절반을 채웠다.

 

 

| 선택 수업

아이들은 ‘선택’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정하는 것이고, ‘수업’은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선택 수업’은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을 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아이들의 말을 이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때 교사가 꼭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선생님을 하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혹시 자기가 잘하는 것 중에 선생님이 되어 알려주고 싶은 게 있으면 알려달라고 말했다. 

 

과학 실험

수공예

야구

목공

 

의 선생님이 구해졌다. 선생님을 하지 않는 아이들은 이 네 가지 중에 하고 싶은 수업을 선택했다. 각 수업별로 모여 필요한 준비물이나 공간을 정하도록 했다. 각 수업의 선생님들이 자기 수업을 선택한 아이들을 모았다. 그리고 자기 수첩에 준비물, 계획 등을 빼곡히 썼다.

 

처음 시도해본 것이었지만, 아이들의 표정에서 활기가 띄고, 삼삼오오 모여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는 모습을 보며 반은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아이들이 즐거워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이 수업들을 즐겁게 꾸려서 진행할 수 있게 내가 무엇을 도와야 할지 고민해서 도와줘야겠다. 

 

 

| 등교중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발표난 후 학교는 등교중지가 되었다. 갑작스럽게 아이들이 학교에 못 오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랑 새롭게 계획한 것들을 이제 막 신나게 해보려고 하는데, 찬물도 이런 찬물이 없다. 아쉬운 마음에 기운이 다 빠졌다. 

 

그날 한 아이에게 연락이 왔다. 목소리를 녹음한 파일을 내게 보냈다.

 

 

“노을 이번 주에는 선택수업 못했으니까 다음 주에는 선택수업 목공이랑 수공예 해줬으면 좋겠어. 꼭 해줘야 돼! 안녕~”

 

처음에는 힘없이 말하더니 “꼭 해줘야 돼!”라고 말할 때는 엄청 크게 말을 했다. 이 친구는 선택수업 중 수공예 선생님인 아이인데, 열심히 준비한 수업을 못하게 돼 등교중지 소식을 들은 날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게 이렇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나는 꼭 그러겠다고 답을 했다. 이렇게 꼭 수업 하자는 메시지를 받은 적이 학교 다니고 처음이었다. 이제야 정말 아이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알겠다. 학교를 다시 개학하면 꼭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지켜서 해야겠다. 메시지를 받으니 더더욱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