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줍줍/우아한 오후 1시

2019.2.2 토요일 1pm



#여행 후

요 며칠 찍었던 사진이랑 일기를 보면서 추억 팔이를 그렇게나 열심히 시간을 쪼개 틈틈이 꼬박꼬박했다.

전에 머리가 복잡하거나 정신없이 바쁠 때는 일을 빨리 처리해야 하니까 여유도 없고 농담도 없었다. 빨리 다음 상황, 다음 일로 전환해야 했다. 그러니 옆 사람과 미소를 머금고 대화를 하는 것보다 빨리 TO DO LIST의 일들을 처리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더 여유를 못 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컨베이어벨트 앞에 서서 내 눈앞의 일을 마치면 바로 다가오는 다음 일을 하느라 옆 사람도 못보고 하늘도 못보고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여행 후 일상 속에서 바뀐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대화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게 됐고 상대방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풋, 킄킄ㅋ, 씨익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웃는건 웃겨서가 아니고 정말로 사랑스러워서 웃는 것인데.......ㅎㅎㅎ) 상대방의 말에 삐딱하게 말하기 보다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 발견되면 너무 기뻤고, 일상 속 작은 것에도 ‘우와~’ 하며 아이처럼 감탄하게 되었다. 마음이 넉넉해져서 그런가보다. 눈빛도 좀 촉촉해 진 것 같고 농담을 많이 하게 됐다.
참 신기하다. 큰 덩어리처럼 무겁고 스트레스로 느껴지는 일들도 그냥 가볍게 직면하게 된다. 일도 그때그때 나만의 데드라인이 넘어가기 전까지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도 없어진 것 같다. 이번 주 내내 추억팔이 하느라 쌓이고 밀린 일들이 후루룩 처리되어 버리기도 했다.

전에 내가 자주 하는 말은 “뭘 그렇게 까지 해?” 였던 것 같다.
‘이 정도면 됐다!’ 하는 그 정도면 됐지, 더 넘어서 시간을 쓰고 마음을 쓰고 고생하면 내 마음이 막 불안해진다. 나는 그렇게 못하니까 부담이 됐던 것 같다.
비슷한 맥락으로 성경을 읽을 때도 이해가 안가는 구절이 있었다. 예수님의 ‘씨부리는 비유’ 였다. 농부는 도대체 왜 길가, 바위 위, 가시떨기에다가 씨를 뿌리는 걸까? 왜 씨를 길가에 뿌려서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게 하고, 바위 위에 뿌려서 금방 말라버리게 하고, 가시떨기 속에 뿌려서 열매를 못 맺게 하는 것일까. 옥토에만 뿌리면 될 것 아닌가. 너무 삐딱한 마음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땅들에 뿌린 씨앗들이 아깝지 않을까? 나는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었다.

여행 후, 밀물처럼 내게 밀려들어오는 마음은 내가 그 하나의 열매라는 것,
내 마음이 길가일 때도, 바위일 때도, 가시떨기일 때도 수년 동안 매 때에 내게 계속 씨가 뿌려져서 결국엔 그 수많은 씨앗 중에 하나가 싹이 틔어지고, 주변의 보살핌 덕분에 자라고 자라 열린 열매라는 것.
단 한 번도 옥토였던 적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기회가 없었을 그 열매가 사랑으로 은혜로 허락되었다는 것,
효율을 따졌다면 절대로 열리지 않았을 열매라는 것을 알았다.

사실 여행을 마치고 바로 일상으로 돌아오진 못했다. 영화 한 편을 봐도 그 여운에 한동안을 헤롱헤롱 대는 나인데, 이번 여행은 얼마나 매 순간이 인상적이었던지 행복했던 만큼의 깊은 우울감과, 사랑했던 만큼의 깊은 공허함이 내 마음을 휩쓸었다. 매 순간의 장면들이 내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애쓰고 애써서 매일매일 말씀을 본다. 잘 들어오지 않고 집중이 안 돼도 꼭 말씀을 읽는다. 과거의 장면에 빠질 때마다 바짓가랑이 붙잡듯 지금 현재로 눈을 돌리려고 애쓴다. (막 과장을 한 건 아닌데 나 좀 유별난 것 같다. 누가 보면 무슨 몇 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 줄 알겠네.ㅎㅎㅎ)

여행 후 나에게 생긴 좋은 변화들을 잘 간직하고 가꿔나가면 좋겠다.

빗질도 자주하고.ㅎㅎㅎ
말씀도 꼬박꼬박 읽고
다짐했던 책읽기도 꾸준히 하고
국제 면허증도 따고 ㅎㅎ
하루의 인상적인 장면을 그림으로 글로 잘 기록하기도 하고.
아!
나도 어디서 돌멩이 하나 주워와서 눈 부으면 찜질도 해야겠다 ㅋㅋㅋㅋㅋㅋ
:)

'하루줍줍 > 우아한 오후 1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2.4 월요일 1pm  (0) 2019.03.13
2019.2.3 일요일 1pm  (0) 2019.03.13
2019.2.1 금요일 1pm  (0) 2019.03.12
2019.1.31 목요일 1pm  (0) 2019.03.12
2019.1.30 수요일 1pm  (0) 2019.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