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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_전시_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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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섬 미술관 | 여행 갈까요2 있을 때 잘하자
뚝섬 미술관 | 여행갈까요 비 오는 날 주말 전시라 그랬는지 비가 와서 그랬는지 1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대기시간이 비행기 타러 기다리는 것 같아 짜증이 나기보다 설레었다. 전시를 보고 난 후 스탬프를 찍는 것도 좋고 감성 가득한 여행 사진 보는 것도 좋았다. 여행은 역시 도착하는 것도 좋지만 준비하는 과정이 기대되고 설렌다. 오랜만에 여행 느낌을 가져 좋았다.
미켈란젤로 | 그가 남긴 말
미켈란젤로 | 사진들
미켈란젤로 | 최후의 심판 최후의 심판총 3단 구성으로 이뤄진다. 가장 아래는 지옥, 중간에는 예수, 위는 천국이다. 미켈란젤로 61세 나이에 그리게 된다. 올 누드로 그린 작품에 대해 비판을 쏟아낸 2인자 추기경을 지옥에 그려놓는다. 지옥의 심판관 미노스로 그려 놓는다. 뱀에 성기가 물리고, 당나귀 귀를 그려 놓았다. 그리고 당시 교황을 예수님 옆에 그려 놓는다. 다른 추기경 모두 지옥에 그려져 있는데, 이 시기가 면죄부를 팔던 시기다.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시기인데, 사람들의 말을 들으라는 의미로 당나귀 귀를 그려 놓았다. 예수 그리스도가올 누드로 그려져 있고, 지옥에 가는 사람의 명단이 훨씬 크고, 천국에 가는 사람 중 흑인이 있는 것이 당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작품에 손대지 마라, 세상이 변하면 작..
미켈란젤로 | 피에타 피에타미켈란젤로가 24살의 나이에 조각을 했다. 돌 하나로 조각을 해 놓았다. 죽은 예수를 끌어앉고 끓어 안은 성모마리아이다. 중세시대 피에타는 인체표현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주제만 전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자 아무도 미켈란젤로가 이 조각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미켈란젤로가 마리아의 옷에 ‘피렌체 미켈란젤로가 만듦’이라고 써놓기도 했다. 급해서 철자가 틀리기도 하다. 미켈란젤로가 이름을 조각하고 난 후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신이 만든 이 세상은 그 어디에도 설명이 없는데 나는 지금 무엇을 한 건가.’ 하며 생각했다. 그래서 그 뒤로는 그 어디에도 작품에 설명이나 이름을 새겨넣지 않았다. 24살의 미켈란젤로가 피에타를 조각한 후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어린 비파들이 있었다..
미켈란젤로 | 아담의 창조 아담의 창조 천지창조로 많이 오해되어 있는데 일본에서 번역을 잘못한 것이다. 아담의 창조가 맞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는 작품은 이 이전에도 많이 그려졌다. 그치만 그 어떤 작품도 이처럼 간결하게 주제만 표현하지 못한다. 신은 살아서 오고 있기 때문에 손끝이 빳빳하다. 인간은 아직 살아나지 않아 손끝에 힘이 없다. 우리는 이것이 연결되는 1초 뒤를 본능적으로 상상할 수 밖에 없다. 그 순간 신의 전지전능함과 탄생의 신비의 짜릿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성당 천장에 그려진 이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전율을 일으킨다. 미켈란젤로는 ‘인간의 몸은 신의 몸을 따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인간 몸을 잘 표현하고 연구하는 것이 신을 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천장 곳곳에는 신체 장기가 등장하는데, 이 작품..
미켈란젤로 | 율리우스 교황과 시스티나 성당 율리우스 2세의 무덤당시 교황은 자신의 무덤을 파라오의 무덤에 필적할만큼 성대하게 지을 계획이 있었다. 이 장기 프로젝트를 의뢰 받고 6개월 동안 돌을 찾아 마침내 작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 교황은 무덤보다 성당을 먼저 지어야 겠다며 작업을 중단시킨다. 그때 만들어진 성당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이다.교황에게 돌 값도 받지 못한 미켈란젤로는 화가 나 피렌체로 돌아가버린다. 그리고 교황에게 “나랑 이야기 하고 싶으면 피렌체로 오라”는 편지를 보낸다. 교황은 미켈란젤로를 다시 로마로 불러 성당 천장의 그림을 그리라고 한다. 교황의 무덤은 시간을 계속 끌다가 결국 제작이 되긴 하지만 계획보다 작게 제작되고, 베드로 성당에 놓이지도 못하고, 교황의 시신이 들어가지 않아 미켈란젤로는 이 무덤을 ‘무덤의 비극’이라고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