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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줍줍/생각느낌발견

엄마의 쌍화탕

안산집에 왔다. 작년 12월 31일에 이사를 하고 오늘이 1월 16일이니까, 2주가 넘도록 못 오고 이제야 왔다. 9시쯤 집에 들어갔더니 아빠가 소파에 누워있다가 나를 보고 놀랐다. 그리고 밥을 먹었냐고 물어본다. 나는 먹었다고 했는데 아빠가 또 먹으라고 했다. 내가 괜찮다고 했는데 아빠는 벌써 일어나서 냉장고를 열었다. 그래서 내가 그냥 알겠다고 했다. 아빠는 밥도 새로 짖고, 김치찌개도 했다. 나는 오랜만에 TV를 봤다. 아빠가 해준 밥과 김치찌개를 먹으려는데 아빠가 계속 나를 쳐다봤다. 뭔가 리엑션을 엄청 크게 해줘야 될 것 같아서, 김치찌개 국물을 한 번 먹고는 크게 “우와!!” 했다. 아빠가 그래도 계속 보고 있어서, 다시 한 번 먹고 “맛있네~” 했다. 그제야 아빠가 소파에 기댔다. 밥도 엄청 많이 퍼줬는데 그냥 다 먹었다. 갓 지은 밥이 맛있기도 하고, 덜러가기 귀찮아서 그냥 다 먹었다. 아빠는 피곤했는지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밤 11시가 넘어 엄마가 퇴근을 했다. 도어락 소리가 들려서 내가 안마의자 옆에 숨어 있었다. 가끔 엄마가 퇴근하고 들어오면 내가 숨어서 “짠~!” 한다. 그날도 내가 숨어서 “짠~”하니까 엄마가 웃는다. 퇴근한 엄마랑 거실에 앉아서 감을 먹었다. 밥 먹고 하나 먹었는데 엄마가 또 먹자고 해서 또 먹었다. 바닥에 엄마랑 나란히 앉아서 나는 재방송으로 세네편씩 이어서 하는 미생을 봤다. 엄마는 집에 오면 그동안 못한 카톡을 보느라 핸드폰을 봤다. 엄마는 핸드폰 용량이 16기가인 폴더폰을 쓰는데 용량이 거의 다 차서 뭐가 잘 안된다고 카톡에 잘 모르는 사람들 이름을 지웠다. 처음엔 나보고 해달라고 했는데, 내가 몇 번하다다가 너무 많아서 엄마한테 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이름을 꾸욱 누르고 숨김을 누르는 건데 엄마는 몇 번 해보다가 안 된다고 했다. 내가 다시 알려주면 “너는 잘되는데 나는 왜 잘 안 되지?”한다. 낯설어 하며 화면을 툭툭 누르는 엄마가 너무 귀여웠다. TV를 보는 내내 엄마한테 붙어있었다. 엄마를 안고 엄마 어깨에 기대서 TV를 봤다. 엄마는 계속 핸드폰 카톡에 모르는 사람 이름들을 지웠다. 요즘 엄마가 아랫배 운동을 한다고 했다. 거실에 누워서 다리 들었다 올리기를 갔이 했는데 엄마 다리가 짧막해서 귀여웠다. 운동하는 엄마 모습이 너무 귀엽다. 나는 엄마 모습에 푸하하하 웃었고, 엄마는 내가 웃으니까 “왜앵~” 하면서 웃었다. 다리 들었다 내리기를 10번 정도 했는데 엄마가 벌써 아랫배가 빠진 것 같다고 했다. 나한테 배를 보여주면서 살이 빠진 것 같다고 해서 나도 그렇다고 했다. 자꾸 자기 배를 보라고 하는 엄마가 너무 귀여웠다. 엄마랑 오랜만에 같이 침대에 누웠다. 잠이 잘 와서 내가 먼저 잠이 든 것 같다.
다음 날 내가 너무 푹잤다. 엄마는 이미 출근을 하고 없고, 시계를 보니 11시가 넘었다. 엄마한테 11시에 가기로 해서 부랴부랴 일어났다. 마침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피곤하면 안 와도 괜찮다고 했다 푹 쉬라고 했다. 엄마한테 좀 미안했다. 나는 별로 하는 것 없이 노는데 그런 나한테 피곤하니까 더 쉬라고 한다. 일어나서 안산집에서 챙길만한 게 뭐가 있나 찾아봤다. 그랬더니 침대 밑에 안 쓴 냄비, 그릇세트들이 잔득 있었다. 엄마의 보물창고다. 커피포트랑 믹서기도 있었다. 어디서 선물 받은게 있으면 나중에 우리 시집갈 때 주려고 거기다가 다 모아둔다. 집에 쌓아둘 곳 없으니까 어디서 이런 거 얻어오지 말라고 내가 전에 잔소리를 많이 했었다. 그랬더니 침대 밑에다가 숨겨 둔거다. 진짜 귀엽다. 엄마 생각대로 정말로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 서울집에 필요한 그릇, 프라이팬, 믹서기를 챙겼다.
내가 안산집에서 나가 사니까 아빠는 살판이 났다. 깔끔한 아빠가 그동안 내 물건들 때문에 어수선한 거실이 마음에 안 들었나보다 내가 가니까 아주 싹 치워놨다. 그런데 엄마방은 그대로다. 내가 내짐을 아직 다 못빼기도 하고 엄마가 바빠서 정리를 잘 못하기도 했다. 미안해서 내가 이것저것 물건들 정리를 좀 해줘야지 싶어서 정리를 시작했는데, 테이블 위에 빈 쌍화탕이 보였다. 이상하게 울컥 눈물이 났다. 그 방 안에서 혼자 있을 엄마 생각에 마음이 찡했다. 방 안에서 혼자 일어나고, 혼자 자고, 감기 기운이 있으면 혼자 쌍화탕을 먹었을 엄마 모습이 그려졌다. 눈물이 너무 많이 났다. 엄마랑 떨어지기 싫은 마음, 아이처럼 하루 종일 엄마랑 붙어 있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들어 더 눈물이 났다. 엄마 여권이 보여면 여행 못 보내줘서 미안해서 눈물이 나고, 떨어져 있는 엄마 옷을 보면 옷걸이에 걸어주면서 눈물이 났다. 거울 앞 바닥에 놓여 있는 엄마 화장품들, 샘플들을 보면 제대로 된 화장대 없이 이렇게 화장하는 모습이 그려져서 또 눈물이 났다. 엄마가 너무 좋은 만큼 더 떨어지기 싫고 같이 있고 싶었다. 나중에 결혼해서 정말 떨어져 살면 그땐 또 어쩌나 생각하니까 또 눈물이 났다. 눈물 펑펑 흘리면서 엄마방 바닥을 정리해줬다.
정리를 마치고 짐을 차에 옮겼다. 짐이 꽤 많아서 두 번은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짐을 차에 넣어놓고 짐에 들어왔는데 엄마가 잠깐 집에 왔다. 일이 끝나고 다른 일을 갈 때 엄마는 잠깐 집에 들러서 구르프를 만다. 엄마가 아직 안갔냐고 반가워해서 짐을 옮기고 바로 가려다가 엄마랑 좀 더 놀았다. 엄마가 머리 구르프 마는 동안 엄마가 좋아하는 트로트를 틀어줬다. 무슨 노래가 듣고 싶냐고 물어보니까 주현미의 ‘내일 가면 안되나요’를 말했다. 나보고 내일 가라고 한 말인것 같았다. 노래를 틀어주니까 구르프 다 말고 일어나서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른다. 엉덩이를 흔들흔들 하고 손동작도 하면서 심취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동영상을 찍으면서 웃었다. 동생들한테도 엄마가 나보고 내일 가라고 내일 가면 안되나요 노래 부른다고 영상을 보내줬다. 엄마랑 놀다가 엄마 일터에 차로 데려다 줬다. 나도 바로 용인으로 왔다. 밤이 되니까 엄마 혼자 잘 생각에 마음이 찡해진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은 이방사람들이나 구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어떤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마태복음6:31-32)” 라고 하셨다. 나는 하나님께 엄마를 위해 기도했다. 엄마가 너무 외롭지 않기를, 엄마가 일하는 곳에 사람들이 많이 가기를, 엄마가 하나님을 알기를, 엄마가 꼭 천국에 가기를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