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를 넘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를 죽이는 사람마다, 자기네가 하는 그런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올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므로, 그런 일들을 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런 일들을 말하여 두는 것은, 그 일들이 이루어지는 때가 올 때에, 너희로 하여금 내가 한 말을 도로 생각나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16:1-4)
전병과 아히멜렉 그리고 골리앗의 칼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고 있었고 숨을 헐떡거리며 놉의 성소에 나타났다. 아히멜렉에게 빵을 달라고 했지만 그곳엔 빵은 없었다. 대신 제단에 올리는 빵 전병이 있었다. 그 빵은 매주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제단에 올려놓았던 빵이다. 한 주가 지나면 새 빵을 갖다 놓았는데 전 주에 만든 빵은 오직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게 되어있다. 일반 사람들은 그 빵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겠지만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아히멜렉은 종교 규정을 접어 두고 다윗에게 그 빵을 내어 주었다. 아히멜렉은 율법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성소가 침벙당하지 않도록 지키는 데 있어 까다롭게 구는 사람이 아니었다. 종교 규정의 문자가 아니라 그 정신을 간파할 줄 알았다. 천여 년 후 예수님은 이 사건을 언급하시면서 율법의 문자에 얽매이지 않고 그 정신을 따른 아히멜렉을 넌지시 칭찬하셨다. (마12:1-5)
빵을 다 먹은 다윗은 제사장에게 무기를 달라고 했다. 성소에는 골리앗의 칼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하나님을 향한 자신들의 믿음과 신뢰를 새롭게 하곤 했다. 다윗은은 그 칼을 차고 길을 떠났다. 그는 허기지고 무방비인 상태로 성소에 들어왔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든든하고 갖추어진 모습으로 성소를 더났다.
성소란 무엇을 하는 곳인가?
교양 있게 행동해야 하는 경건한 장소인가? 묵상하고 사색하며 모데, 베드로, 바울 등을 기억하는 곳인가 그렇기도 하지만 성소는 긴급한 상황에 놓였을 때 도움을 얻는 곳이기도 하고, 여행을 위한 양식을 주고 싸움을 위한 칼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궁지에 몰려 양식과 무기 없이 필사적으로 도망칠 때 우리는 성소를 찾는다. 그러면 거기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우리는 그 거룩 속에서 생명력과 삶을 깊이 있게 하는 힘을 발견한다. 위험을 만나 약해질 대로 약해진 채 성소에 들어온 우리는 어느새 그 위험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힘을 얻고 무장을 갖추게 된다.
도엑, 적당한 교인
그는 다윗이 성소에 온 그 날 종교 의식을 행하기 위해 그 성소에 와 있었다. 본문은 그가 “주 앞에서 하여야 할 일이 있어서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삼상 21:7) 라고 말한다. 그곳에서 그는 다윗의 행동을 다 지켜보았다. 사실 도엑은 하나님께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정치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아마 어떤 정치적인 이득이나 정당화를 위해 그 장소에 왔을 것이다. 도엑에게 성소는 자신을 위장할 가리개를 얻는 장소이다. 그는 그저 적당한 교인이었다. 그러니 도엑이 성소에 앉아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나에게 성소는 어떤 곳인가?
중국 청도에서 처음 자발적으로 교회에 갔다. 그 땐 너무 외로워 친구를 만나고 싶어 갔었다. 나중에는 유학생이니 밥 해먹는 게 귀찮고 변변치 않아 배를 채우러 갔었고, 좀 더 지나고 나선 하나님의 말씀이 궁금해 말씀을 배우고 사람들과 나누러 갔었다. 나중에 하나님을 알게되고 하나님의 사랑에 행복해할 땐 하나님이 사람들(중고등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져 내가 받은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밥을 사주고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를 하기도 했었다. 교회에서 비전을 찾았고, 비전인,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정체성과 개성을 알도록 돕는 일을 조금씩 훈련하며 하게 되었다. 바로 세상으로 나가진 못했다. 경쟁하고 싸우는 세상속으로 바로 나가기 두려워 교회 안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며 숨어지냈고, 이제 더이상 받기만 하기 너무 뻘쭘해질때쯤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하기 위해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
친구 - 밥 - 말씀공부 - 묵상 - 배움 - 교제 - 나눔 - 성장 - 꿈 - 일 - 섬김
청도에서나 한국에서나 위의 상황들의 반복이었다. 그러다 가끔 탈진하거나 무슨 일을 해야 할지 혹은 내가 누군지 헷갈리게 되면 언니님을 찾아가 다시 밥을 얻어먹고, 사랑을 듬뿍 받고 왔었다.
지금 나는 ‘나눔’, ‘성장’, ‘꿈’의 언저리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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