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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줍줍/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7. 광야_엔게디의 다윗

​| 그리고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께서 사십 일 동안 광야에 계셨는데, 거기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 (마가복음 1:12-13)

광야
광야에 있으면 감각, 시각, 청각, 후각이 예민해진다. 광야에서는 그렇게 된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더 만히 믿게 된다. 고독 속에서 얽히고설킨 불안정한 삶의 연결 망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인식이 발달한다. 거룩에 대한 감각이 생겨난다. 신성함이 드러난다.
“광야는 사람이 아직 질문하기를 배우지 못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고 낸시 뉴홀이 말했다.
사람들은 광야에서 며칠(혹은 몇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자신이 좀더 자신다워지고 정리되고 자연스러워진 것을 느낀다.
광야에는 언제나 아름다움과 위험 그리고 자연 그대로의 단순성과 끔찍한 재난 사이의 긴장이 존재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러한 긴장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마을과 도시로 나가 살게 된다. 하지만 광야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광야에 처할 때 우리는 겁을 먹겠지만하나님의 위대한 신비와 삶의 특별한 소중함에 직면하는 곳이기도 하다.

​세 가지 광야 이야기
다윗의엔게디 광야 이야기는 다른 두 가지의 광야 이야기와 같은 부류에 속한다. 하나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40년 동안 시내 광야를 지나간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유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이야기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이 이야기들은 성경에 나오는 세 가지 위대한 광야 이야기다.
광야는 시험의 장소이며 유혹의 장소다. 광야는 야생의 땅이다. 길들여지거나 경작된 것은 전혀 없다. 문명을 지탱해 주는 일상적인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순전히 생존이다.
모세 광야 이야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분간하는 법을 훈련받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법을 배웠다. 광야 체험은 ㅎ나ㅏ님 앞에서 온전히 사는 삶을 준비하는 기가니었다.
예수님의 광야 이야기는 종교와 영성,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분간하는 법을 배웠고, 그것을 통해 그분은 우리의 협력자, 충고자, 좋은 친구를 넘어 우리의 구세주가 될 준비를 갖추셨다.
다윗의 광야 이야기에서 우리는 미움받고 한 사람의 인간이기를 거부당하고 한 마리 사냥감 신세로 전략한 젊은이가 신성 모독의 삶과 기도의 삶 중 하나를 선택하는 기로에서 결국 기도를 택하는 모습을 본다. 그는 기도를 선택하면서 거룩을 연습하는 삶을 시작했다.
다윗은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인간다워져 갔다.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 가장 인간다워진다.

​동굴 속의 사울 왕
사울이 동굴로 들어올 때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가 어찌감히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분을 해하려 하겠습니까?”라고 말한다. 다윗은 사울을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부른다. 하나님과 관계 맺으며 살아간 광야 생활을 통해 다윗 안에는 신성함을 알아볼 줄 아는 감각이 크게 자라났던 것이다.
광야는 다윗에게 모든 곳에서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광야는 다윗에게 생명의 고귀함을 가르쳐 주는 학교였다. 광야 생활을 통해 다윗은 전에는 기대하지 못했던 장소와 사물들 안에서 하나님을 알아보는 법을 훈련했다. 돌멩이 하나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ㅇ라아보는 법을 배운 다윗은 그 어떤 사물도 그 어떤 사람도 감히 함부로 대하거나 업신여길 수 없었다.

​내가 주께로 피합니다.
다윗은 거룩을 발견함과 동시에 피난처를 발견했다. 광야 자ㅔ는 무대에 불가하다. 사울과 다윗은 둘 다 광야에 있었다. 사울은 오로지 다윗을 잡을 생각에 다윗을 쪼차 달려갔고 살인만을 생각했다. 반면 다윗은 하나님께로 달려가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기도를 하며, 경이로움에 눈을 크게 뜨고 그 영광을 받아들이며 한결같은 사랑과 약속을 지키시는 진실의 하나님에 대해 알고 준비했다.
광야를 호락호락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곳은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야를 회피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 곳은 참으로 경이로운 곳이기 때문이다.

​나의 광야
그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지나가면 ‘그 곳이 광야였나?’ 하다. 질문 많고 납득 되지 않은 것 투성이었던 10대 때의 나의 생활도, 그 이후 갑작스럽게 가게 된 중국 유학 생활도, 한국으로 돌아온 후 전공과 아무 상관 없는 꿈을 이루고 싶어 했던 그 시간들도 다 돌아보니 참 힘들고 막연했지만 그 시절을 추억할만큼 내겐 값지고 아름다게 느껴진다. 지금도 나는 광야에 있는 건가? ㅎㅎ 잘 모르지만 힘들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지금 시간이 엄청 아깝기도 하다.